나의 스승 백오 이해선(2)_안장헌 대한사진예술가협회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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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2-11-15 11:52 조회214회 댓글0건본문
1974년 11월, 선생의 고희기념 「이해선 사진작품전」이 대한사협 주최 한국사협 후원으로 신문화관 화랑에서 열렸다. 이 전시회가 선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이 되었다. ‘향토 풍물50경’을 주제로 선생의 사진인생 청산전이 된 셈이다. 전시 준비과정에서 작품집 발간을 논의하였으나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실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았다.
또한 선생께서는 6·25전쟁 와중에 필름을 모두 태워 버려야 했기 때문에 새롭게 사진촬영 작업에 박차를 가하여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말까지 상당량의 작품을 갖고 있었다. 특히 궁궐 사진은 건축물과 석물로 나누어 정리해 놓았다.
1980년 봄, 윤주영(전 문화공보부 장관)씨가 백오선생에게 사진공부를 하면서 선생께서 공들여 준비해 놓은 궁궐 사진을 책으로 엮어내었으면 좋겠다며 문화재관리국을 소개해 주었다. 내가 출판의 실무를 맡아 문화재관리국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궁궐건축편은 『한국의 고궁』으로 출판하기로 결정되었으나, 궁중석물편은 예산문제로 추진할 수 없었다. 선생께서 꼼꼼히 배열 순서와 레이아웃까지 손수 챙겨주셔서 편집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인쇄공정에서 인쇄소에의 늑장과 무성의로 교정지도 내주지 않아 내가 직접 제판 필름을 수정하여 다행히 연말을 넘기지 않고 선생의 첫 저작물을 출간할 수 있었다. 글은 신영훈 씨가 백오 선생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담아 썼으나, 글쓴이를 따로 밝히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여 책에는 밝히지 않았다. 이 기회를 빌어 신영훈 선생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한국의 고궁은 그 후 문화재보호협회에서 추가 인쇄를 거듭하며 궁궐건축 연구와 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보수 과정에서 없어진 경복궁 자경전 뒤뜰 십장생 굴뚝의 연돌이 선생의 책 덕분에 되살아났고, 지금 보물로 지정하여 보호되고 있다. 문화재관리국에서는 소정의 저작료를 선생에게 지불하였고, 그 저작권료를 재원으로 선생의 사진작품집도 발간할 수 있었다.
『이해선 사진작품집』은 선생의 소희기념 사진전에 발표한 50점에 60점을 더하여 120쪽의 아담한 책이 되었다. 이 책의 편집도 선생께서 손수 하였다. 책에 정가를 붙여 판매할 것을 권하였어나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후배 사우들의 눈을 더럽힐 수도 있는 책을 판매할 수 없다” 하여 비매품으로 나누어 주었다. 선생의 그 사진집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선생의 작품세계를 회화주의적 살롱사진으로 규정지어 온 것이 얼마나 잘못된 선입견인지를 그 사진집은 보여준다.
2005년 가을, 백오 이해선 선생의 탄신 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대한사진예술가협회에서 선생의 유작전을 열어드리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선생의 생전에 출판하지 못한 궁중석물편을 책으로 엮어보려 하였으나 선생께서 직접 선정하여 정리해 놓은 원고를 찾지 못하였다. 전체 사진원판 중에서 다시 골라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윤주영 님께서 선생의 모든 원판을 밀착인화하여 번호순으로 정리해 준 것을 유족이 보관하고 있어 선정작업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선생의 미발표작 중에는 1950-60년대의 생활상을 담은 의미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21세기의 젊은이들에게 사오십 년 전 우리네 삶의 면면을 선생의 작품세계와 더불어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다. 3×5사이즈 인화를 하면서 흑백 필름을 직접 스캔하며 준비작업을 시작했다. 때맞추어 눈빛출판사 이규상 사장도 한국사진예술의 개척자이신 백오 선생의 작품집을 출판하고자 하였기에 선생의 유작 사진집 발간을 위해 앞장서 주었다. 이 책에 수록된 백여 점의 작품은 대부분 미발표 유작이다. 선생이 평소 이웃들의 삶에 얼마나 애정어린 시간으로 밀착해 왔는지를 이 사진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선생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행운을 감사하며 단편적이 감회를 적어보았다. 1967년부터 1983년 10월 선생과 사별할 때까지, 때로는 멀리서 가끔은 가까이서 선생과 지내 온 16년은 이제와 되돌아보니 너무도 철없이 선생께 어리광만 부렸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선생의 유작 사진작품집을 선생이 떠나신 지 22년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펴낼 수 있게 되어 송구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백오 이해선 선생은 우리나라 사진 예술을 개척한 큰 별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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